의원회관 745호실 이야기(12)

2020년 예산안 논의도 막바지다. 상임위 논의는 끝났고, 12월3일 예산안 상정을 예고하고 있으니 조만간 예결위 소위, 소소위에서 교섭단체 간 막판 조율이 있을 것이다.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예전과 같이 예산안 의결이 12월31일을 넘기 일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예산안 통과 전 한두 번 곡절은 예상된다.

정부의 올해 예산안은 전년도 대비 9.3% 증가한 513조 5천억 원이다. 총수입을 482조 원으로 예상하고 있으니 31.5조 원의 적자예산이다. 가계는 일부러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쓰려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지만, 경제가 어려운 때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한 적극적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 최근 한국 경제를 둘러싼 어려운 상황을 이유로 정부에 이 요구가 많았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번 예산안은 이런 의견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의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예산안’이라는 호들갑은 어울리지 않는다.

서민들이 만질 수 있는 돈이야 몇백만 원. 집을 사고팔거나 전세금을 주고받을 때 통장을 스치는 돈이 기껏 억 단위의 돈이다. 정부 예산안을 보고 있으면 몇천억, 심지어 몇조 원의 단위는 우리에게 비현실적이기만 하다.

▲ 사진 : 뉴시스

예산안을 보고 있자니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방위비 분담금 6조 원이 아른거린다. 6조 원이라는 돈은 얼마만큼의 돈일까? 6조 원은 정부 예산안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19년 정부의 추경예산이 5조 8천억 원 정도였으니, 미국이 원하는 대로 방위비를 인상시켜 주려면 추경 규모의 예산을 방위비 분담금을 위해 별도로 편성해야 한다.

이제 막 아들을 군대로 보낸 의원실 선배님은 6조 원이라는 돈이 35만 명의 사병들에게 한 달에 13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할 수 있는 돈이라며, 현재 받고 있는 50만 원과 합치면 사병들에게 최저임금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지역사무소에서는 일하는 선배는 울산시 한 해 예산 규모가 3조 원대라면서 이 돈이면 울산시를 2년간 운영할 돈이라고 정의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겐 먼저 아동수당이 떠오른다. 7세 이하 아동들에게 10만 원씩 지급하는 아동수당 예산이 한해 2조 2천억 원에 지나지 않는데, 6조만 투자하면 단순 계산해도 지금보다 3배 이상의 돈을 지급할 수 있다. 유럽 복지국가에 맞먹는 아동수당이다.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있는 부모라면 등록금을 생각해 볼 만하다. 대학 등록금 총액은 14조 원 규모로, 국가장학금 4조 원과 학교 장학금 등을 제외하면 7조 원을 부모와 학생들이 부담하는 꼴이다. 6조 원의 돈이면 대학 등록금을 거의 무료로 할 수 있는 돈이다.

우리나라 가구 수가 2천만이 조금 넘으니 6조 원이면 우리나라 가구당 29만 원의 현금을 나눠줄 수 있고, 국민 1인당 12만 원의 돈을 줄 수 있는 돈이다. 미국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내가 낸 세금에서 그만큼의 현금을 갈취해 가고 있다는 뜻이다.

나의 관심은 다시 의원실 업무로 돌아온다. 작년까지 예결위원을 하고 있어서 의원실로 이런저런 민원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지역 예산 확보를 위해 다른 의원실로 찾아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조선 산업 위기와 정몽준의 정치 활동 중단을 계기로 울산 동구 주민의 삶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나온 정몽준의 복지공약 덕분에 동구에는 현대중공업의 주도로 복지시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정몽준의 정치 활동 중단과 조선 산업 위기를 이유로 현대중공업은 지역의 문화회관, 수영장, 목욕탕, 어린이집까지 매각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복지시설이 많던 곳이 갑자기 복지시설이 열악한 지역이 되어버린 것이다.

공공시설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니 민간시설을 공공화하고 부족한 공공복지시설들을 유치하기 위해 의원실은 분주하다. 20억 원이면 현대중공업이 팔아치운 동부 복지회관을 공공화할 수 있고, 150억이면 동구에 문화체육시설 하나쯤을 건립할 수 있는 예산이다. 6조 원이면 이런 시설을 몇 개나 지을 수 있을까?

본질은 자주국방·자주외교에 있겠지만, 그냥 생각해봐도 6조 원은 참 큰돈이다.

방위비 분담금은 국회 비준 사안이다. 정부가 미국의 주장을 일부라도 수용한 안을 가지고 온다면 방위비 분담금을 두고 국회에서의 논란도 다시 시작될 것이다. 협상 국면인 지금은 정부와 진보진영이 한편에 설 수 있지만, 방위비 분담금 비준 논의가 될 때쯤이면 싸움의 구도도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때 진짜 자주국방과 평화를 주장하는 정치인이 누구인지 이 6조 원의 돈이 가르쳐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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